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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MA- 중 등 수 학

선행보다 중요한건 다시보는 용기입니다.



선행보다 중요한 건 다시 보는 용기입니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말들이 있어요
선행은 2~3년쯤 되어 있고 학교 진도는 잘 따라가고 있다고
지금은 중간고사가 있으니까 진도 먼저 나가고 방학 때 기초는 다시 메꾸면 된다고요…마음 충분히 이해됩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성적이 있고 아이가 자신감을 잃을까 걱정도 되시겠지요 그런데 막상 수업을 시작해보면 겉으로는 진도를 나가고 있어도 속은 텅 비어 있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문제는 푸는데 왜 그렇게 푸는지는 모르고 공식은 외웠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상태 저는 이런 아이들을 매년 여러 번 만납니다

가장 흔한 패턴은 이거예요
진도는 나가지만 기초 개념은 불안하고 시험은 다가오니까 일단 문제집으로 밀고 가고 방학이 되면 앞부분을 메꾸자고 하시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아요 방학은 금세 지나가고 다시 학기가 시작되면서 또 진도를 따라잡느라 바빠지고 결국 앞의 구멍은 구멍인 채로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는 거죠
그렇게 공부가 쌓이면 아이는 점점 수학이라는 과목에 지치고
나중엔 자기가 원래 못하는 줄 압니다. 저는 이런 흐름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반대로 기초부터 다시 시작한 아이들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저는 잘 알고 있어요 중1 첫 시험에서 10점을 받았던 한 친구는 수학에 자신이 없었고 거의 손을 놓고 있었어요
그 아이와는 1학년 개념부터 정말 처음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자존심도 상하고 반복도 싫었지만 점점 달라졌고 결국 중2 첫 시험에서 95점을 받았죠 또 한 친구는 중학교 2년 내내 거의 찍는 식으로 시험을 봤던 아이였는데 고등학교 올라가기 전 겨울 조심스럽게 “선생님 저 중1부터 다시 공부하면 너무 늦었을까요”라고 물었고 저는 오히려 그 순간이 기회라고 느꼈어요
그 친구는 매일 중1부터 복습을 다시 시작했고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수학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어요
저는 고등부는 맡지 않기 때문에 그 이후의 성적은 정확히 보지 못했지만 어머님을 통해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말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건 아이 입장에선 솔직히 쉽지 않아요.남들보다 느리게 가는 것 같고 다른 친구들은 선행 나갔다고 하는데 나는 왜 자꾸 뒤를 돌아봐야 하나 싶고 그래서 자존감도 더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진짜 자존감을 회복하는 순간은 꼭 시험을 잘 봤을 때만은 아니더라고요

어느 날 한 아이가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 반에 ○○는 고등 선행까지 나갔다고 맨날 자랑했는데
제가 푸는 현행 심화 문제를 걔는 못 풀었어요 제가 그 문제를 풀어서 알려줬을 때 아 진짜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아이에게 그건 그냥 문제를 하나 맞혔다는 의미가 아니었어요
그 순간부터 아이는 나는 가르침 받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거죠
제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느낀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서로의 실력을 조용히 확인하고 있다는 거예요
누가 선행을 몇 년 했는지가 아니라 지금 내가 아는 걸 저 친구는 모르네 하는 순간 그걸 아이들은 금방 알아채고 마음속에 기억합니다 그런 일이 한 번이라도 생기면 아이들은 선행을 못 했다는 불안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더라고요 아 내가 아는 게 진짜 실력이구나 하는 감각이 생기면 그다음부터는 남이 어디까지 나갔느냐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수학은 진도를 나간다고 해결되는 과목이 아니고 단원과 단원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다음 학년으로 넘어가도 결국 다시 그 구멍에서 무너지게 돼요 그래서 저는 이 글의 제목처럼 말하고 싶습니다 기초가 무너지면 선행은 소용없다고요
결국 중요한 건 지금 이 아이가 자기 공부를 배우는 중인가
혼자서 다시 해낼 수 있는 공부 습관이 자리잡고 있는가예요
성적은 그 다음입니다 기초가 제대로 잡히면 아이는 반드시 올라옵니다 저는 그걸 너무 많이 지켜봐 왔어요

그리고 저는 그냥 초등 중등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일 뿐인데요
수능이 끝나고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해주는 친구들..군대 가기 전 마지막으로 얼굴 보러 왔다고 말해주는 아이들이 종종 있어요
많은 선생님들께 배웠지만 그중에서 나를 기억해줘서 그리고 그 기억이 좋았다고 말해줘서 제가 오히려 고마운 순간들입니다

지금 우리 아이가 뒤처졌다고 느껴진다면 진도를 더 나가는 것보다 돌아갈 수 있는 용기를 먼저 만들어 주세요..
그때부터 수학도 공부도 아이도 달라지기 시작합니다!